나이브한 인간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도 그런 방향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고.

그러나 안타까운 것이 있다.
그런 착하고 진취적인 태도가 외부적인 요소들,
즉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운을 완전히 호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입증된 바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들.

당신이 지금껏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하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했을 때,

Q1 : 당신은 도둑이나 사기꾼의 목표로 찍히지 않을 수 있는가?

Q2 : 묻지마 살인범으로부터 안전한가?

Q3 :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불구가 될 위험은 없는가?

Q4 : 펀드가 쪽박나거나 주거래 은행이 망해서 자산이 순식간에 날아갈 위험은?

Q5 : 지진, 화산, 산사태, 츠나미, 혜성의 충돌 등이 몰고올 재난을 피할 수 있는가?

Q6 : 어느 날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당신을 간첩혐의로 구속하고, 재판에서 일사천리로 사형이나 징역 판결이 떨어지는 일이 없으리라 단정할 수 있는가?



그럼 정답은?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훌륭하고 모범적인 생활도, 위에 제시된 위협이 닥칠 확률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 모범적인 생활과 외부의 운, 환경의 위협간에는 뚜렷하게 인지가능한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연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논리적이기 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주술적, 미신적인 사고방식에 가깝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착하고 모범적이며 성실한 생활은 권장 할 수 하지만,
여러 위협들이 안정된 생활과 성취, 행복을 짓밟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파제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들 사이에는 모순되거나 뒤떨어진 법, 비틀린 권력, 부도덕한 자본 등으로 부터 비롯된 것들 역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것을 바라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성실하게 살면 그만이다." "법에서 보장하지 않는 권리를 요구하는 쪽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신경함에는 어떤 의미에선 찬사를 보내고 싶다.

천하의 몽상가 순둥이들 같으니. 행복하겠다.


오로지 개인의 근면과 성실만으로 그가 누릴 행복과 안정의 크기가 결정되는 세상.
그것 역시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아이들도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은 포기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바둥거릴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손에 닿지 않는 부분이 모두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고쳐나가야 한다.
사회제도는 자연물이 아니다. 6000년의 인류 문명사가 쌓아온 인공물일 뿐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며 항상 개선이 필요한 불완전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이후에, 겸손히 천명을 기다리자.

by 가일 | 2009/01/25 23:23 | 잡담록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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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스트 at 2009/01/26 11:08
성실한 생활태도만으로 외부의 위협을 벗어날 수 있었다면
인류의 무기 발달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지진 않았을 듯. -_-;;;
Commented by 벚꽃냥이 at 2009/01/26 11:22
인간은 투쟁하는 생물이라는 것이죠.. 허허
Commented by A강진 at 2009/01/26 14:28
그렇습니다. 할수 있는 걸 하고 나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랑애 at 2009/01/27 21:37
적어도 올바르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은 도둑이나 사기꾼, 간첩 등으로 몰렸을 때 긍정적으로 변호해줄 사람을 확보하기 쉽고, 불의의 사고나 병이 찾아왔을 때 슬퍼하며 치료법이나 기타 등등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자산이 순식간에 날아가도 도움을 줄 사람을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겠죠. 천재지변으로 다 같이 날아가버렸을 때는 뭐 답이 없고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실한 생활을 한다는 말이 주변 환경을 무시한 체 나만 잘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피해는 주지 않는 자세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 방법이 성실하다면 호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호감이나 호의처럼 비과학적인 게 정말 위험한 상황에 닥쳤을 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확실히 의심스럽다는 분도 계시지만, 전 사람 관계만큼 비과학적인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실함과 모범적인 행동은 종교적이거나 주술적, 미신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회적인 믿음에 있어 가치가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손익관계에 따라 움직인다지만 그런 손익관계와 금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약속 위에 생겨난 믿음의 통화인걸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합니다. 심형래 감독이 용가리에서 재산을 탕진했을 때 다시 한 번 해보라며 한 자산가가 상당량의 금액을 기증한 행위,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과연 종교적, 주술적, 미신적인 믿음에서 나온 걸까요?

한결같이 착한 사람은 생태, 물리적인 주변환경에는 확실히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줘요.
차갑게 생각하면 소설과 만화, 그림등도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한걸요. 하지만 그것에 감동한 사람들이 있고, 시장이 형성되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돈이 움직이고 있죠.
악용되는 건 그 과정이 아니라 시장이 형성된 후의 잿밥에 대한 이야기니까 논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표면상으로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사람의 태도(개인의 감정, 사교 등)에 대한 입장을 손익관계만으로 해부하여 그와 관련된 환경적인 측면, 특이 케이스 등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서 따지는 건 조금 핀트가 어긋난 이야기가 아닐지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자면… 누가 이유는 묻지 말라며 절 찌르거나 천재 지변에 일어나 망할 때는 망할 때고. 주변 분들이 저 때문에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보기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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